방문규 수출입은행장, 의전·격식 파괴…'수장' 아닌 '동료 리더십'으로 소통

입력 2021-02-02 17:06   수정 2021-02-03 00:48


“시차가 제각각인데 많이 모여주셔서 고맙습니다. 해외에선 셧다운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카메라 앞에 앉은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이 화상으로 연결된 직원들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서울 여의도 본점부터 인도 뉴델리사무소까지 세계 곳곳에 흩어진 5년차 이하 직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근 열린 ‘비대면 타운홀 미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원들끼리도 얼굴 맞대기 힘든 상황에서 은행 경영에 대한 내부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방 행장이 마련한 자리다. 좋아하는 책, 체력 관리법 등으로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은행의 재무건전성, 인력 부족 문제 등에 대한 거침없는 문답으로 옮겨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수은 부산지점 이지혜 차장이 물었다. “어떤 행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방 행장은 이렇게 답했다. “매일 수은과 여러분이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방 행장은 “여기 있는 동안 문제만 안 일으키면 된다는 자세로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며 “일할 때는 ‘빡세게’ 하고, 그렇게 ‘전우애’가 생겨야 오래가는 법이더라”고 했다.
‘반전 매력’의 운동광·독서광
수은은 평범한 개인 소비자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기업금융에 주력하는 국책은행인 데다 1금융권에서 유일하게 예금도 받지 않는 은행이어서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일수록 수출입·해외투자 기업에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는 곳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엘리트 관료 출신들이 역대 행장을 거쳐갔다.

늘 말끔한 정장차림, 호리호리한 체구, 반듯한 외모…. 행정고시 28회 공무원 출신인 방 행장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하지만 주변에선 그가 ‘문과’보다 ‘예체능계’에 가깝다고 말한다. 매일 책을 읽고 시를 쓰던 그를 친구들은 ‘문학소년’으로 불렀다고 한다. 체육교사였던 부친은 학창시절 방 행장에게 하루종일 운동만 시켰다. 그 덕분에 지금도 휴일엔 하루 6시간까지 자전거, 헬스, 수영, 등산 등을 즐기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가 됐다. 업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면 소설이든 수필이든 30분 동안 책을 넘기며 재충전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방 행장은 30여 년의 관료생활 동안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한다’ ‘주변에 적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수은에서도 의전과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통한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수은의 스포츠 동호회에 비서진 없이 나타나 직원들과 부대꼈다. 본점 구석구석을 돌며 직원들을 격려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눈 그를 접한 한 직원의 얘기다. “보도자료 사진 찍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모든 직원을 만난 뒤에 끝나더라고요.”
“숫자로 치장한 보고서는 버려라”
방 행장이 수은에 강조하는 것은 ‘하드 워킹(열심히 일하기)’이 아니라 ‘스마트 워킹(똑똑하게 일하기)’이다. 그는 거창한 양식의 보고서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손으로 끄적인 메모지를 앞에 놓고 자유 토론하는 것이 수은의 일상적인 회의 풍경이 됐다. 직원들을 가장 혼낼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작년 버전에 숫자만 바꾼 보고서를 가져올 때”라고 했다. 줄곧 나라 예산과 국고, 세금 등을 만져온 그에게 ‘숫자 치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법도 하다. 이런 문서에는 거침없이 빨간 펜이 그어진다.

“숫자 뒤에는 조직이 가져가야 할 업무방향과 정책이 담겨져 있습니다. 양식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숫자의 의미를 모른다는 거예요. 과거에 해온 일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고민하지 않으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방 행장은 수은 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수장’이 아닌, ‘동료’라고 규정했다. 그는 “누구든 어느 조직에 들어간 순간 그곳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구성원들이 하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래가 있고 성장하는 조직은 결국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 매일 조금씩 향상되는 곳”이라는 게 방 행장의 지론이다.

금융권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얘기도 있다. “방 행장은 하필 때를 잘못 만나(?) 고생이 많은 행장이다.” 코로나19 사태에 이래저래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뜻이다. 수은은 지난해에만 58조원을 대출·보증 등으로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쏟아부었다. 은행으로서 지켜야 하는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올 정도다. 주력 지원 분야인 조선, 건설플랜트 등의 위축 역시 수은에는 반갑지 않은 환경이다. 원래 수은 행장은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은데, 방 행장은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런 얘길 건네자 방 행장은 “직원들과 아웅다웅하며 지내다 보니 1년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며 웃었다. 결코 녹록지 않은 시점에 수은 수장을 맡았지만, 그 덕분에 직원들과 끈끈해진 ‘전우애’를 얻었다는 것이다. 수은과 인연을 맺은 알짜 중소기업들을 현장 방문하며 느낀 산업현장의 활기도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했다.
“리더는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야”
방 행장이 이끌고 있는 수은의 중요한 변화는 ‘디지털 전환’이다. 지난달 조직개편에서도 디지털서비스부를 디지털금융단으로 격상해 비대면 상품 개발부터 운용까지 책임지도록 했다. 국책은행과 디지털, 언뜻 듣기에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방 행장은 “내부에서 ‘우리 업무는 특수해서 디지털화가 쉽지 않다’고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은이야말로 디지털화가 가장 용이하고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했다. 계약서, 신용장 등을 다루는 대부분 정형화된 업무라는 이유에서다. 수은은 중소기업들이 온라인에서 ‘원스톱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올해 선보일 계획이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영역도 이렇게 바꿀 수 있구나’라는 경험을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업무에서도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죠.”

이를 통해 기존 인력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고도의 기업금융과 신사업 발굴에 전환 배치해 신성장동력에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 방문규 행장은

△1962년 경기 수원 출생
△1985년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1995년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석사
△2009년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박사
△행정고시 28회
△2009년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
△2013년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2014년 기재부 제2차관
△2015년 보건복지부 차관
△2018년 경상남도 경제혁신추진위원장
△2019년~ 수출입은행장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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